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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도롱뇽 안에 나 있다
- 황상호
- 조회 : 9077
- 등록일 : 2010-05-25
도롱뇽 안에 "나" 있다
[서평] 나카자와 신이치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황상호 (homerunse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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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가 중요하지만, 전국에 수억 마리 있는 도롱뇽 몇 마리(가) 죽는다고 공사를 못하는 현장은 자연보호일까 발목잡기일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강원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섬뜩했다. 그가 말한 "도롱뇽 몇 마리"에서 용산이 떠올랐고, 철거민들을 "떼 쓰는 사람"이라고 했던 같은 당 어느 의원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구는 로드킬 당하는 야생동물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고, 누구는 "도롱뇽 몇 마리" 때문에 목숨 건 투쟁을 한다. 혹시나 벌레를 밟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새 걸음을 하는 자가 있다면 포클레인으로 싹 밀어놓고 뿌듯해 하는 사람이 있다. 그 개발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거나 뒷돈 좀 챙기려는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겠다. 다만 광화문 인공 꽃밭을 보며, 콘크리트로 덮인 한강을 거닐며 "개발되니 좋구나" 감탄하는 일부 도시인들의 허접한 생태 감수성에 절망감을 느낀다.
삶터는 도시화되었고, 경제는 계량화를 거쳐 숫자만 남았다. 대학은 기업의 2중대가 되어 학문을 병들게 하고 있다. 연애는 옹졸한 자아로 가득해 "밀고 당기기"에 여념이 없고, 우정은 누구의 스펙이 우월한가라는 자연선택 앞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어느 구절처럼, 우리는 정말 유리로 만든 의안을 끼고 살아가는 것일까. 서로를 단절시키는 이놈의 유리벽, 깨야한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 사고"라는 망치를 들었다. 좌파가 있으면 우파가 있듯, 합리적 사고에는 "대칭성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 <대칭성 인류학>(나카자와 신이치 저, 김옥희 역, 동아시아 펴냄)이다.
모든 염소가 내 아내이고 자식이면 쉽게 죽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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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Fuction btns -->▲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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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인류학<!-- E: first TAG -->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학, 철학, 종교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기존 텍스트들을 재배치했다. 그가 말하는 "대칭성 사고"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큰 축으로 한다. 과학적 사고가 "A는 ~A가 아니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이 바탕이라면 대칭성 사고는 A와 ~A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를 상상하면 좋겠다. 사고의 원천은 신화다. 톰슨 인디언의 신화 <사냥꾼과 야생염소>를 보자.
한 젊은 사냥꾼이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연히 매력적인 아가씨를 만나고 그녀를 쫓아 바위산을 오른다. 그러다 바위 틈새 절벽으로 추락한다. 그가 떨어진 곳은 저승이 아닌 고차원의 세계.
"이제부터 나는 당신의 아내예요. 여기는 야생 염소의 동굴이며, 당신네 사냥꾼들은 이곳을 찾아내지 못할 거예요."
여자는 아내를 자처하며 젊은이에게 염소 털가죽을 건넸다. 남자는 옷을 두르자 숫염소로 변한다. "자, 가서 암염소들과 관계를 가지세요." 아내는 야생 염소가 된 젊은이를 부추겼다. 그렇게 젊은 숫염소는 아내와 장모, 늙은이를 포함해 모든 암염소와 관계를 가진다. 모든 암염소에게 자신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발정기가 끝나자 야생 염소들은 젊은이를 인간세계로 돌려보낸다. 아내는 말한다.
"자, 당신의 활과 화살이 여기 있어요. 야생 염소들을 죽이거든, 그들도 사람이니까, 사체를 다룰 때는 경의를 표해주세요. 암염소는 당신의 아내이며 당신의 아이들을 낳을 테니까 쏴서는 안 돼요. 새끼 염소는 당신의 자손인 셈이니까 쏴서는 안 돼요. 처남에 해당하는 숫염소들만 쏘세요. 그들을 죽이더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현실에서 염소계와 인간계는 적대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염소를 사냥해야 하고, 염소는 최대한 인간을 멀리해야 한다. 하지만 부인 염소는 갈등보다 타협안을 제시한다. 숫염소는 잡아먹되 암염소와 새끼 염소는 놓아주라고 한다. 이유가 기가 막히다. "그들도 사람이니까요" "모든 염소가 당신의 씨앗에 비롯한 자손입니다" 사고 쳤으니 책임지라는 거다. 이 부분이 비대칭적 사고(염소와 인간의 적대적 관계)와 대칭성 사고(동반자적 관계)가 만나는 지점이다.
실제 톰슨 인디언이 염소를 정말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우리는 대칭적 사고에서 지혜를 뽑아내야 한다. 먼저 생태적 배려다. 암염소와 새끼 염소를 죽이면 염소 전체가 멸종할 수 있다. 염소의 멸종은 곧 인간에 대한 위협이다. 사냥하되 적정선을 서로 정했다.
또 대칭적 사고는 "윤리"를 탄생시킨다. 부인 염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 그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닌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죽음을 극복하는 용기를 준다. 인간 세계와 염소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순간 영적인 힘을 얻는다.
부인은 말한다. "염소를 잡아먹되 남기지 말라. 죽은 염소를 위해 제를 올리라"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하다. 신화는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칭성 사고가 그 이유다.
대칭성 사고는 잃어버린 한 쪽 날개를 찾는 일이며, 야생적 사고라는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도롱뇽으로 돌아가 보자. 비대칭 사고로 보면 그들은 나의 "가족"이며, 미래의 "나"다. 그런데도 죽일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