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단비뉴스 편집실
[서평]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유정화
- 조회 : 9834
- 등록일 : 2010-02-10
1975년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이 발표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이하 <잃어버린 명예>)는 2010년 한국에서 읽어도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론의 편향된 보도, 가십위주의 보도가 어떻게 한 개인을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잃어버린 명예>는,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사건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한 때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미네르바는 한낱 전문대 졸업생인 백수로 알려지면서 진위논란을 낳았고, PD수첩 제작진의 개인 전자우편은 유력지 1면에 실려 사생활 침해와 검열 논란이 일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o:p> </o:p>
<잃어버린 명예>는 평범한 27세 여성 카타리나 블룸이 한 일간지 기자를 살해하게 된 배경에 관한 이야기다. 소박하고 성실한 블룸은 카니발 기간에 벌어진 한 파티에서 은행강도에 살인혐의까지 있는 괴텐을 사랑하게 되어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 일로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다. 일간지 <차이퉁>은 조사과정을 필요이상으로 공개해 블룸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그녀의 지인을 인터뷰해 그녀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다. 조서의 토씨 하나도 다시 점검하고 서명하는 꼼꼼한 성격의 카타리나 블룸은 <차이퉁>에 등장한 자신의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인터뷰 내용을 점검한 후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고, 결국 <차이퉁>기자를 살해하게 된다.
<o:p> </o:p>
소설은 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알리기 위해서 블룸이 경찰 수사를 받는 날부터 5일 간 그녀의 행적을 재구성하여 보고한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직접 등장하여 사건의 이해를 돕는 논평을 한다. 덕분에 독자는 블룸이 왜 <차이퉁>기자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소설을 읽어내려가게 된다.
<o:p> </o:p>
일단, <차이퉁>의 왜곡보도는 도가 지나치다. 블룸과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보도사례에서 왜곡은 극에 달한다. 블룸의 어머니가 “왜 그런 결말이 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고 말한 것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겠지요”라고 바꿔 보도한다. 블룸의 어머니는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기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직원으로 변장한 후 몰래 잠입해 딸의 혐의 사실을 알리고 인터뷰를 강행한다. 놀란 어머니가 충격으로 사망하자 오히려 블룸을 ‘어머니를 사망하게 한 불효녀’라고 매도한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에 분노한 블룸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장례식에서 눈물을 꾹 참자 <차이퉁>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울지 않는 냉혈한’이라고 보도한다.
<o:p> </o:p>
또한 <차이퉁>은 블룸이 ‘빨갱이”라는 색깔공격도 빼놓지 않는다. 그 근거로는 블룸이 일하는 집 주인인 블로르나 변호사의 부인이 진보적인 성향이라는 것과 블룸의 아버지가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든다. 그러나 이는 블룸의 성향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지 못 할뿐더러, 설사 블룸이 사회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괴텐을 숨겨주고 도망하도록 한 혐의와는 무관한 인신공격적 발언일 뿐이다.
<o:p> </o:p>
언론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당대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68혁명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의 독일 한 소도시에서 은행강도사건이 일어나 시민 한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다. 통속적인 일간지 <빌트>는 별도의 확인절차와 증거도 없이 이 사건을 68혁명 당시 도시 게릴라 그룹이었던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바더 마인호프 그룹, 살인 행각을 계속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뵐은 <빌트>지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슈피겔>지에 쓰지만 대중들은 오히려 ‘뵐이 테러조직을 옹호한다’며 분노한다. 이 사건은 <잃어버린 명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다.
<o:p> </o:p>
<o:p> </o:p>
앞서 말했듯 이 책의 저널리즘에 대한 묘사는 현실의 여러 장면들과 겹친다. 뵐은 이 책의 서두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라고 썼다. ‘불가피하다’라니, 대중에게 읽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언론이 흥미위주의 가십보도를 하는 것은 필연이라는 뜻일까. 언론인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써 이 책을 읽고 나면 “입체적 취재를 통한 정확한 사실보도”, “특정 이념에 치우쳐 현실을 그릇되게 묘사하지 않는 언론인의 양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o:p> </o:p>
그러나 이 소설이 사실보도와 언론인의 양심의 중요성을 말하는 방식은 도덕적이거나 당위적이지 않다. 이 책의 부제는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길고 인상적인 제목이 기사 때문에 피해를 본 시민 당사자의 시점에서 나왔다면, 부제는 기사를 쓰는 기자의 시점에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하나의 기사가 멀쩡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 수도, 원수로 만들 수도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기사의 큰 영향력만큼이나 그것이 잘못될 경우 발생하는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평범한 카타리나 블룸을 ‘살인범의 정부’,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만든 소설 속의 기자는 살해당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왜곡 보도를 일삼고 멀쩡한 개인에게 색깔을 덧씌우는 짝퉁 기자들도 이 소설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o:p> </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