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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드라마 추노를 말하다.
- 조형진
- 조회 : 9812
- 등록일 : 2010-02-05
이다해 가슴라인 모자이크, 명품 식스팩, 신부화장한 노비, 드라마 추노를 둘러싸고 입방아를 찧는
내용들이다. 공중파를 타는 드라마이니 지나친 선정성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자체의 선정성보다 드라마를 다루는
기사들이 논란을 부추기며 오히려 더한 선정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논란들은 드라마 주변의 이야기들만 전달해 "추노"의 시청률 잘
나오는 이유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뛰어난 영상미, 출연자들의 노출, 화려한 액션, 코믹요소, 탄탄한 스토리, 개성있는
캐릭터 등이 보통 인기요인으로 꼽힌다. 이 모든 요소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인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겉도는 분석일 뿐이다.
전복의 에너지, 이것이 추노의 절대적인 힘이다. 추노는 제작진의 소개대로 "쫓는 자, 쫓기는자"의
이야기이다. 쫓고 쫓기는 사연들이 기구하다. 양반집 도련님이 추노꾼으로, 도망친 노비가 양반으로, 조선최고의 무장이 노비가 되어
쫓고 쫓긴다. 신분제가 절대적인 조선시대에 신분이 뒤바뀐 것은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뒤집힌 세상에서 쫓고 쫓기니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도망과 추격의 움직임들이 구구절절 애절하다.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소망이 엇갈려 나온다. 양반이었던 추노꾼
대길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를 원하지만, 양반이었을 때는 노비인 언년이와 결혼하기 위해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도망노비 신세로 전락한 무관 송태하는 유배지로 간 어린 왕손을 지켜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뒤집어진 세상과 뒤집혀지기를 원하는 세상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전복의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여기서 나오는 긴장감이 추노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추노를 연출하는 곽정한 감독의 전작 <한성별곡-正>에도 전복의 에너지가 넘실댄다. 집안이
몰락한 양반집 규수는 암살을 위한 살수가 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도령은 살수를 체포하려 하는 포도청 군관이 된다. 또한,
규수를 짝사랑했던 노비는 시전 총행수(조선시대 한양 주요 상점들의 총책임자)이자 살주계(주인을 살해하고자 했던 노비들의 단체)의
계주가 되어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이런 전복의 에너지는 ‘소망하지 않으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사로 응축이 되어
나타난다. 감독은 전복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두 번째는 이야기 전개방식이다. 곽 감독은 이미 전작 <한성별곡-正>에서 추노의
전개방식을 다져놓았다. 한성별곡은 정조의 암살을 다룬 이야기이다. "누가 정조를 죽이려고 하는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커다란
축이 되어 한성별곡은 일종의 추리극 형식을 취하게 된다. 현재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끌어가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예전 이야기가 중간 중간 끼어들어 현재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면 시간순서를 따라 가는 것보다 더 큰 현실감을 준다. 시간은 순서대로 가지만, 사람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을
계속 떠올리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추노에서도 쫓고 쫓기는 현실을 이야기의 큰 축으로 삼으며 플래시백
기법으로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추노에서는 과거 사연의 일부만 떼어서 보내주고 나중에 나머지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반전효과까지
노린다.(이전까지는 한섬이가 거짓자백을 한 내용만 보여주었다. 그런데 10회 분에서 그것이 혼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태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현재에서 진행된 이야기의 일부분이 다음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하는 것도 뛰어나다.(송태하가 언년이를 치료했을 당시 "무사는 칼을 두고 떠나지 않습니다. 칼을 두었다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표시입니다." 라고 했던 말이 제주도에서 언년이가 송태하의 칼을 보고 기다리게 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곽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 방식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방식은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동시에 일부분만
보여주는 기법으로 새로운 궁금증이 일어나게 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 방식은 현실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세 번째는 완급조절과 비틀기이다. 빠른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느린 변화구도 효과적으로 사용하듯이
감독은 강함과 약함, 빠름과 느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긴박감 있는 장면은 정적인 장면과 교차편집으로 배치하고, 액션장면도
빠르게 진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에 정지를 걸거나 느리게 보여준다. 초반부에 대길이는 사랑하는 여인, 언년이가 시집 간다는
소리를 듣고 미친듯이 말을 타고 달려간다. 이윽고 언년이가 시집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이 계속 교차적으로 나오면서
빠름과 느림, 운동과 정지, 긴박감과 평온함(대길을 사랑했던 언년의 심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화면의 분위기상...)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보는 사람은 당연히 "대길이가 언년이 시집 못 가게 난장판을 치겠구나"라고 예상을 한다.
감독은 이 예상을 비틀어버린다. "언년이가 시집간다는 말"은 대길을 죽이려 했던 또 다른 추노꾼 천지호가 파놓았던 함정이었다.
거기서 대길은 천지호네 추노패와 칼부림을 하며 새로운 긴장감을 형성한다. 추노는 강약과 완급 조절, 그리고 비틀기로 어느 새
시청자들의 의식 흐름을 지배하게 된다.
추노, 벌써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이 드라마가 이 외에도 어떤 에너지와 테크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일지 두고 볼 일이다.
내용들이다. 공중파를 타는 드라마이니 지나친 선정성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자체의 선정성보다 드라마를 다루는
기사들이 논란을 부추기며 오히려 더한 선정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논란들은 드라마 주변의 이야기들만 전달해 "추노"의 시청률 잘
나오는 이유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 뛰어난 영상미, 출연자들의 노출, 화려한 액션, 코믹요소, 탄탄한 스토리, 개성있는
캐릭터 등이 보통 인기요인으로 꼽힌다. 이 모든 요소들이 적절히 어우러져 인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겉도는 분석일 뿐이다.
전복의 에너지, 이것이 추노의 절대적인 힘이다. 추노는 제작진의 소개대로 "쫓는 자, 쫓기는자"의
이야기이다. 쫓고 쫓기는 사연들이 기구하다. 양반집 도련님이 추노꾼으로, 도망친 노비가 양반으로, 조선최고의 무장이 노비가 되어
쫓고 쫓긴다. 신분제가 절대적인 조선시대에 신분이 뒤바뀐 것은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뒤집힌 세상에서 쫓고 쫓기니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도망과 추격의 움직임들이 구구절절 애절하다. 그런 와중에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소망이 엇갈려 나온다. 양반이었던 추노꾼
대길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원래대로 되돌려 놓기를 원하지만, 양반이었을 때는 노비인 언년이와 결혼하기 위해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도망노비 신세로 전락한 무관 송태하는 유배지로 간 어린 왕손을 지켜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뒤집어진 세상과 뒤집혀지기를 원하는 세상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전복의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여기서 나오는 긴장감이 추노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추노를 연출하는 곽정한 감독의 전작 <한성별곡-正>에도 전복의 에너지가 넘실댄다. 집안이
몰락한 양반집 규수는 암살을 위한 살수가 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도령은 살수를 체포하려 하는 포도청 군관이 된다. 또한,
규수를 짝사랑했던 노비는 시전 총행수(조선시대 한양 주요 상점들의 총책임자)이자 살주계(주인을 살해하고자 했던 노비들의 단체)의
계주가 되어 그녀를 지키고자 한다. 이런 전복의 에너지는 ‘소망하지 않으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사로 응축이 되어
나타난다. 감독은 전복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두 번째는 이야기 전개방식이다. 곽 감독은 이미 전작 <한성별곡-正>에서 추노의
전개방식을 다져놓았다. 한성별곡은 정조의 암살을 다룬 이야기이다. "누가 정조를 죽이려고 하는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커다란
축이 되어 한성별곡은 일종의 추리극 형식을 취하게 된다. 현재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끌어가면서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활용, 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예전 이야기가 중간 중간 끼어들어 현재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복합적으로 구성하면 시간순서를 따라 가는 것보다 더 큰 현실감을 준다. 시간은 순서대로 가지만, 사람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을
계속 떠올리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추노에서도 쫓고 쫓기는 현실을 이야기의 큰 축으로 삼으며 플래시백
기법으로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추노에서는 과거 사연의 일부만 떼어서 보내주고 나중에 나머지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반전효과까지
노린다.(이전까지는 한섬이가 거짓자백을 한 내용만 보여주었다. 그런데 10회 분에서 그것이 혼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태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을 보여주었다.) 현재에서 진행된 이야기의 일부분이 다음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짜임새 있는
구성을 하는 것도 뛰어나다.(송태하가 언년이를 치료했을 당시 "무사는 칼을 두고 떠나지 않습니다. 칼을 두었다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표시입니다." 라고 했던 말이 제주도에서 언년이가 송태하의 칼을 보고 기다리게 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곽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복잡한 이야기 방식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그런 방식은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동시에 일부분만
보여주는 기법으로 새로운 궁금증이 일어나게 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 방식은 현실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세 번째는 완급조절과 비틀기이다. 빠른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느린 변화구도 효과적으로 사용하듯이
감독은 강함과 약함, 빠름과 느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긴박감 있는 장면은 정적인 장면과 교차편집으로 배치하고, 액션장면도
빠르게 진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에 정지를 걸거나 느리게 보여준다. 초반부에 대길이는 사랑하는 여인, 언년이가 시집 간다는
소리를 듣고 미친듯이 말을 타고 달려간다. 이윽고 언년이가 시집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이 계속 교차적으로 나오면서
빠름과 느림, 운동과 정지, 긴박감과 평온함(대길을 사랑했던 언년의 심사는 그렇지 않겠지만 화면의 분위기상...)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보는 사람은 당연히 "대길이가 언년이 시집 못 가게 난장판을 치겠구나"라고 예상을 한다.
감독은 이 예상을 비틀어버린다. "언년이가 시집간다는 말"은 대길을 죽이려 했던 또 다른 추노꾼 천지호가 파놓았던 함정이었다.
거기서 대길은 천지호네 추노패와 칼부림을 하며 새로운 긴장감을 형성한다. 추노는 강약과 완급 조절, 그리고 비틀기로 어느 새
시청자들의 의식 흐름을 지배하게 된다.
추노, 벌써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이 드라마가 이 외에도 어떤 에너지와 테크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일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