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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기다려..사랑이 된다면... 물고기자리
- 선희연
- 조회 : 9681
- 등록일 : 2009-12-20
기다려...사랑이 된다면..... 물고기자리
언제인가 ‘슬픈’ 영화를 보러 친구들과 극장에 간 적이 있다. <가족>이었던가. 평소 슬프다는 장면에 무심하기도 하고 혹은 친구들이 감동받은 곳과는 다른 부분에서 혼자 슬프다고 우는 독특한 감성을 지녀서인지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훌쩍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혼자 뻣뻣하게 앉아있었다. 그래서 ‘뻘줌함’(?)을 느끼고부터는 영화보다 관객들에 집중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더라. 다들 같은 부분에서 동시에 울음이 터졌다.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감성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부터 일부러 ‘이 부분에선 울어라’하고 만든 영화가 싫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지루하리만치 재미없는 영화가 더 제격이다. 잔잔한 영화는 의외로 보고 난 뒤 감정이 격해진다. 내겐 <물고기자리>라는 영화가 그랬다. 중학생일 때 ‘사랑’이란 단어도 잘 모른 채 봤지만 아무튼 혼자서 엄청 울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최근 다시 봐도 예전 그 느낌 그대로였다.
<물고기자리>를 평가하는 혹자들(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은 영화에서 주인공‘애련’이 아닌 배우‘이미연’을 찾는다.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사랑’아 아닌 미저리 쯤의 ‘광기’로 치부해버린다. 그녀의 사랑에 아무도 공감하지 못한다 하고, 저런 사랑은 끔찍하다고 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용재라는 인물의 대사에 의하면,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늘 뒤에만 있게 되는 그런 사람. 이 영화 속에서 애련은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애련을 애련하다 생각지 못하더라.
군입대를 앞둔 철없는 어린 동생을 둔 "Sad Movie" 란 비디오 가게의 주인이자 29살의 노처녀인 그녀는, 식사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해결하고 스티커사진도 혼자 찍고 쇼핑도 혼자하며 가게로 돌아와 재미있게 생긴 폭죽을 혼자 터뜨려보며 혼자 재미있어 하는 쓸쓸한 솔로이다. 널찍한 2인용 침대도 혼자 쓰고, 홈쇼핑 채널을 통해 광고되는 커플 시계를 보고 감탄해도 "넌 혼자니까 필요 없잖아" 라고 면박 주는 친구가 있을 뿐이다. 그녀가 자주 찾는 조이마트 앞에서는 새파랗게 어린 젊은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열렬한 키스를 나누기도 하건만, 그녀는 오늘도 혼자다.
내가 영화 제목과 같은 물고기자리여서 두둔하는 것도, 열혈 이미연의 팬인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 물고기자리라는 영화가 참 좋다. 사람을 보면 첫인상이라는 느낌을 오래 간직하는 것처럼, 나는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첫인상’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의 잔잔함도, 파스텔톤 노란색과 파란색의 톤앤매너(tone and manner)도, 어울리는 음악, 소품, 배경도 나에겐 좋은 첫인상이었다. 현실 같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애련의 사랑이 물고기자리적인 광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사랑은 진실했다. 또한 그녀의 사랑은 진실했으나 잘못된 방법이었다. 시계를 좋아하지 않는 동석에게 "이래야만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며 시계를 선물하고, "터보레이터" 따위의 삼류 영화를 즐기는 손님에게 "영화는 음식과 같다" 며 예술 영화를 권해준다. "아르바이트 좀 구하지" 라고 탄식하며 "Sad Movie" 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것을 질려하는 단순한 성격의 동생에게 지루한 영화를 보게 하며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좋지 뭐" 라고 말하고, 전기선 문제로 불이 들어오지 않는 스위치에 대해 "뜯어봤다가 전기라도 돌면 어떡해" 라고 겁을 내는 동생에게 "남자가 그것도 못하냐" 라며 면박을 준다. 동석의 집에 잠입하여 자신이 사 온 꼬마 오렌지 주스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자신이 가져온 시트로 동석의 침대 시트를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애련은 자신의 방법으로 동석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마음이 진실되기에, 그래서 애련의 사랑이 꿈 같은 먼 나라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현실 같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난 보고 나면 꿈을 꾼 것 같은 영화가 좋다. 그래서 난 <물고기자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