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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기회? - 쇼크독트린을 읽고
- 유정화
- 조회 : 10072
- 등록일 : 2009-12-20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쇼크독트린’은 사건(팩트)과 역사적 맥락(콘텍스트)이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둘은 함께 강해지거나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일깨워준다. ‘쇼크독트린’은 시카고 학파가 각국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사용한 쿠데타, 급격한 시장개혁, 고문과 살해 등의 탄압, 전쟁, 재난 등의 충격 요법을 뜻한다.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폭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THE Take>를 찍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시민운동가들의 바이블로서 칭송받았던 <NO LOGO>를 내놓았던 나오미 클라인은 다시 한 번 ‘쇼크독트린’이라는 ‘놀라운’ 저서를 통해서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와 역할에 대한 모범이 됐다. 그녀는 남미,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중동에 이르는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난 신자유주의 개혁의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당시의 정부 관계자와 학자, 저항했던 시민들, 고문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각 국의 국회와 각종 민․관 위원회들의 방대한 문헌들과 당시의 언론 보도들을 검토함으로써 ‘사실’ 규명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당시의 언론보도들을 통해 종종 왜곡됐던 사실들을 정정함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객관적인 맥락 위에 올려놓는다. 그 맥락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련의 사태들을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의 배경과 희망의 조건을 묻는 또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나오미 클라인이 제시한 가장 새로운 개념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이다. 이는 전쟁과 테러, 역병 등과 같은 재난 자체가 급격한 민영화 계획 추진의 계기이자 대상으로 이용되는 상황을 뜻한다. 2001년 부시행정부의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은 전자업체와 바이오테크회사 등의 다국적 기업의 대표나 이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CEO형 인물로 재난과 위기를 창출하고 관리하는 군대와 CIA, 적십자사, 유엔, 재난 응급대처 기관들 등 공공부문의 마지막 보루들도 민영화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는 국가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국방, 안보 등의 국가의 핵심기능마저 다국적 기업의 이윤창출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인 동시에 재난 자체를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90년대의 IT버블이 붕괴하자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던 다국적 기업들은 9.11테러를 기점으로 감시카메라나 국경감시 산업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산업, 용의자 체포 기술과 관련된 산업, 전쟁 기지를 건설해주고 군대에 인력을 공급하고 관리해주는 산업 등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산업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더욱 성장한다. 테러나 전쟁 뿐만 아니라 쓰나미 피해지역인 스리랑카와 카트리나에 휩쓸려간 뉴올리언스주에서도 이들은 활약은 두드러진다. 자연재해의 혼란과 충격을 틈탄 이들의 투자와 개발 ․ 건설 사업은 수많은 난민을 만들어내고 각지의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
저서 ‘쇼크독트린’에서 시도하는 분석은 두 가지의 쇼크요법을 그 기본 틀로 삼는다. 하나는 1950년대 정신과 의사 이웬 카메론이 CIA의 후원을 받아 실행했던 쇼크요법이다. 이는 강한 전기충격으로 인간의 정신을 백지상태로 만들고 그 백지에 건강한 생각, 예를 들면 반공 사상을 주입하는 요법이다. 다른 하나는 시카고 학파의 수장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했던 자연의 상태, 즉 기업에게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진 상태를 방해하는 가격보조금이나 국영기업과 같은 국가개입의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기 위한 쇼크요법이다. 백지 상태를 만들기 위해 고통을 가하고 고통과 혼란의 시기에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카메론의 쇼크요법과 동일한 이 두 번째 쇼크요법은 앞으로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상을 분석하는 데 기본 축이 된다.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 학파가 자신들의 쇼크요법을 처음 시도한 국가는 칠레이다. 칠레에서의 쇼크요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국유화 노선을 견지한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가 첫 번째 쇼크, 밀턴프리드먼의 자본주의 쇼크요법(민영화, 규제철폐, 사회복지예산 삭감)이 두 번째 쇼크, 저항하는 자들에 대한 고문과 감각 박탈 기법이 세 번째 쇼크이다. 미 국무부와 CIA, 칠레 소재 미국 기업들, 칠레 군부의 협력에 의한 이러한 쇼크요법은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국가들에서도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쇼크요법이 가져온 사회적 고통과 혼란에 대해서 당시 인권운동가들이나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낸 보고서들은 직접적인 폭력과 고문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만약 칠레에서 시카고 학파의 이론이 인권탄압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실행되었다면, 시카고 경제학의 주창자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탄압정책과 경제정책을 하나의 통합된 프로젝트로 보아야 하는지, 또는 탄압정책이 경제정책 보다는 후진적인 정치 상황에 기인한 면이 크다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는 친기업적인 경제정책을 펴면서 후진적인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지금 한국 상황에서도 고민해 볼만한 쟁점일 것이다.
다음 질문은 “시카고 스타일의 쇼크 요법은 미국 ․ 영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가?”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영국 대처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초로 급진적인 자본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실시했던 역사를 소개한다. 바로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빗을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두 대머리 남자들 간의 싸움’이라고 비유한 이 전쟁은 효용이 별로 없는 섬에 대해 각 국 정부가 자신들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 감행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 이후 영국은 광부 파업을 진압하면서 노조 말살 정책을 실시하고 80년대 중후반에 걸쳐 각종 국가 산업을 거의 모두 민영화 ․ 매각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잔인하고 억압적인 모습이 오히려 강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인식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난 열린우리당 정권에 대한 평가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의 전망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이제는 쇼크요법에 대항하는 정부들, 소위 좌파적인 정부들이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남미 좌파정부들의 발전주의적 개혁은 왜 좌절했는가?”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볼리비아 대통령 파즈는 당선 이전 국가 중심의 발전주의적 전망을 제시했지만, 결국 시카고 스타일의 쇼크요법을 받아들이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에 대해 비상사태 선포, 통행금지, 공장․대학․ 방송국 급습, 발포, 고문과 살해 등의 극단적인 통치를 했다. 이는 당시 신 정권이 물려받은 국가 채무에 더해 미 FRB의 이자율 상승정책으로 인한 채무의 악순환으로 개도국 상당수가 겪었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였다. 미국의 원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파즈는 미국과의 밀실거래에서 쇼크요법에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즈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 또한 좌파적인 강령을 내세웠지만 미국과 IMF의 압력 속에서 파즈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된다.
심지어 ‘사회화된 기업, 노동자 의회’를 주장했던 자유노조가 집권한 폴란드에서 600%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붕괴되자, 부채 탕감과 원조를 대가로 가격통제 철폐, 보조금 대폭 삭감, 민영화, 주식시장 창설, 변동환율제 도입 등의 볼리비아식 개혁이 그대로 추진된다. ‘자유헌장’의 이념을 기반으로 흑인들의 경제권력 확보와 국가 통제를 강령으로 내세웠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ANC(아프리카민족회의)와 만델라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ANC는 수권 이후 이전 수권당인 국민당과의 협상에서 중앙은행의 독립과 재무부장관 ․ 중앙은행 총재의 국민당 인사 기용 등의 문제를 양보했다. 예를 들어 GATT 보조금 지급 금지에 서명해 수백 개의 공장이 파산 상태에 이르렀고,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가 하면, 신 헌법에 모든 사적 재산에 대한 보호 조항을 명시함으로써 토지 재분배를 불가능하게 했다. WTO 지적 재산권에 서명함으로써 무료 에이즈 치료제를 복제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채무 상환의 부담으로 복지예산 또한 삭감되었고, IMF ․ WB와의 협정에 발목을 잡혀 환율위기와 원조삭감, 자본이탈의 두려움을 안고 이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인 금융자유화를 주장하는 IMF나 WB를 거스르고 새로운 경제모델을 재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가?” 이들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절망이자 또 하나의 질문이 될 것이다.
중국, 소련 등 공산권의 개방․개혁도 서구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영향을 받았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서구 언론은 ‘근대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학생들의 서구 스타일의 민주적 자유에 대한 희망’과 ‘공산주의 국가를 수호하려는 보수적 권위주의자들’의 충돌로 그렸다. 하지만 사실상 천안문 사태는 덩샤오핑이 임금과 물가에 대한 규제를 제거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상승하고, 시민권과 선거권을 통제하며 무분별하게 시장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중국 인민들이 저항한 사건이다. 즉, 덩샤오핑이 서구 스타일로 경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생긴 탄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덩샤오핑이 밀턴 프리드먼의 조언을 종종 구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대담하게 개혁을 추구한 시카고 학파의 수호자였던 셈이다. 소련의 개혁 역시 시카고 스타일을 그대로 따랐다. 소련 해체(첫번째 쇼크)와 가격 자유화, 자유무역 정책, 민영화로 요약되는 경제 개혁(두 번째 쇼크)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의회와 시민들에 대한 군대의 진압(세 번째 쇼크)의 수순을 밟았다. 당시 서구 언론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던 옐친을 지지하면서 러시아의 실패를 부정부패와 공산주의의 잔재와 제정정치의 탓으로 돌렸지만 이는 언론과 경제계의 기만이었다. 오히려 러시아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옐친을 비롯한 시카고 학파의 장 ․ 차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대규모 이윤과 탐욕이 커다란 혜택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개인적인 부의 축재’ 역시 자본주의의 동력이라고 보는 시카고 학파 경제학의 한계일 것이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들 역시 뒤늦게 신자유주의 개혁을 수용하는 계기가 됐다. 태국의 환율방어능력 부족 루머로 시작되어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으로 확산된 ‘아시아 호랑이들의 몰락’은 다시 한 번 “수백억 달러의 IMF차관과 구조조정 목록 패키지를 교환하는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과 클린턴 행정부, 그리고 IMF의 노골적인 ‘원조하지 말라, 돕지 말라’는 방관과 협박에 못이겨 아시아 국가들은 결국 20개월간 186개 회사의 인수합병에 동의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의 끔찍한 IMF는 이러한 세계적 맥락 속에 놓일 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희망은 무엇인가” 이 책의 비극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의 역사들은 결국 재난의 상품화에 이르면서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나오미 클라인은 지난 수탈의 역사를 겪어 온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의 최근 IMF ․ WB에 대한 거부와 독자적인 노선 추구, 그리고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지원으로 스스로 공동체를 재건해가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경제의 재건이 국가와 정치를 우회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단지 빼앗기고 상처받은 시민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연대의식과 자신들만의 소규모 협동적인 공동체의 아름다움에만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드러난 오류와 한계에 대한 철저한 기록과 발언,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맥락과 흐름에 대한 의미부여가 더욱 절실하다. 수많은 저널리스트들과 시민들,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이러한 맥락에 대해 더 많이 토론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이 끔찍한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 폭주의 방향을 전환할 묘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