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작
단비뉴스 편집실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사람 사는 세상’
- 이수경
- 조회 : 11216
- 등록일 : 2009-05-27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사람 사는 세상’
이수경, 이승현 공동취재팀
‘당신은 우리들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애도의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분향소로 향하는 길의 가드레일마다 꽂혀 있는 국화꽃송이가 조문객을 맞이한다. 봉하 마을 입구부터 분향소 곳곳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조문을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자정이 넘도록 끊이지 않았고, 심야에 발길을 봉하 마을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말이 지나면 조문의 행렬이 줄어들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주말이 지난 26일 현재 봉하 마을을 찾은 조문객이 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엉이 바위로 향하는 길 한쪽에서 사람들의 몸놀림이 분주하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이하: 민예총) 회장 이민환 씨 외 12명이 인터넷 사이트 다음 등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을 모아 만장을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과 같이 유서의 내용을 적기도 하고 ‘편안하십시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등 네티즌의 마음을 담기도 한다. 또한 ‘권위주의 타파’, ‘경제민주주의 실현’등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잇는 내용도 여럿 보인다. 약 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만장을 만드는 민예총 회원들의 바쁜 손길을 돕는다.
만장 작업의 현장 ⓒ 황상호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 만장을 설치하는 일은 노 전 대통령이 가시는 길이 덜 외로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죠. 이러한 활동들이 참여를 중시하던 노 전 대통령의 정책과 결국 맞닿는 것 같아요.” 부산민예총 부회장 이 청산 (53)씨의 말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부엉이 바위와 사저까지 양쪽 도로가에는 촛불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긴 줄이 쳐져 있었고, 노란 리본들이 길 끝까지 달려 있었다. ‘사랑합니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한 번 국사를 맡아주십시오’ 등 리본에는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글귀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길 양쪽에서 노란 파도가 쳤다.
노사모 회원이자 자원 봉사를 자처한 김옥기(51) 씨에 따르면, 리본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어 출두하던 지난 30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달아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하나둘 씩 리본에 애도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움직임이 계속 이어진 결과 글귀가 남겨진 리본은 부엉이 바위와 사저까지 이어지게 됐다. 지난 26일 밤에는 리본 아래 방명록을 대신한 백지가 붙었고, 이는 삽시간에 추모 글이 가득한 벽보가 됐다.
리본과 벽보 ⓒ 이수경
“누구의 강요도 없이, 모든 게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김 씨는 리본과 촛불로 장식된 거리에 대해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꾸던, 새로운 시민민주주의가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아요.”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민주주의 2.0"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시민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이 흐뭇해하실 거라며 쓸쓸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