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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윤순혁]“회사는 반성하지도 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 윤순혁
  • 조회 : 12454
  • 등록일 : 2008-12-11
     
“회사는 반성하지도 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11월10일 한국타이어 노동자 한 명이 또 급사했다. 올 들어 두 명째, 2006년 5월 이후 열일곱 명째이다. 그동안 이 회사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현직 노동자와 유족에게 물었다.
[65호] 2008년 12월 09일 (화) 16:30:27 대전·문정우 대기자 mjw21@sisain.co.kr
   
한국타이어는 어떤 회사인가

1941년 설립된 한국타이어(CEO 서승화)는 전세계 185개국에 타이어를 수출하며 세계 7위 매출 규모이다. 해외 지사 20여 개를 포함해 직원 1만4000여 명이 근무하고 생산된 타이어의 70%를 해외에 수출한다. 천연용제에 유기용제와 화학약품 수백 가지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암 유발 위험 업종으로 분류된다. 오너 조양래 회장은 전경련 회장인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형제지간이며 두 사람의 아버지는 고 이병철씨와 삼성물산을 공동 설립했다가 나중에 떨어져 나와 효성그룹을 창업한 조홍제씨이다.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알게 모르게 자꾸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7년 8월17일 대전일보 보도를 통해서였다. 당시 대전일보는 1년여 동안 한국타이어 노동자 8명이 연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썼다. 보도가 나간 뒤 민주노동당과 유족대책위에 제보가 잇달아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 모두 25명이 죽었으며,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15명이나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기관인 노동부나 산업안전관리공단이 아니었다. 물론 회사도 아니었다. 자기 자식이나 남편이 죽어 눈앞이 캄캄해진 유족이었다. 조호영씨(56)는 2006년 12월28일 아들 동권씨(당시 23세)가 회사 기숙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날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돌아왔다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2006년 1월에 한국타이어 연구소에 입사해 채 1년도 안 돼서였다.

평소 아들 동권씨가 너무나 건강했기 때문에 조씨는 회사 측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의 사인을 놓고 회사 측과 승강이를 하는 동안에 조호영씨는 근래 회사에서 돌연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조호영씨가 수소문하기도 하고 소문을 듣고 연락해온 사람도 있어서 순식간에 사망자 8명의 유족이 모이게 됐다. 그때부터 조씨가 유족대책위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타이어 노조위원장 직선제 추진위원회 위원장 정승기씨(46)의 도움이 컸다. 

   
ⓒ시사IN 한향란
한국타이어 내부고발자 정승기씨. 그는 세 차례나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대전공장에서 물류센터로 ‘귀양’을 갔다.
조씨와 정씨의 제보로 대전일보 보도가 나가자 여론이 들끓었다. MBC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뤘다. 회사 측은 유족대책위(대책위)와 대화를 시작했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는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대책위가 산재 요양 신청을 한 사망자 8명에 대한 산재 심사가 이루어져 그 중 절반인 4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유기용제 같은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 가능성은 낮고 작업장의 고열과 강도 높은 노동이 사망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역학조사에 대해 유족과 시민단체 등은 회사 측이 깨끗이 치워놓은 뒤 작업환경을 조사했다는 등의 이유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연구원 역학조사 과정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타이어 전·현직 사원 7000여 명 가운데 무려 93명이 사망했다고 드러나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시민단체에 제보가 더 들어와 사망자 수는 현재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사 측은 연구원 역학조사를 방패 삼아 국회 국정감사 때 추가 역학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 그 와중인 지난 11월10일 한국타이어 제조1팀장인 김 아무개씨가 잠을 자다가 피를 쏟아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급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씨는 회사 건강검진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연구원은 한국타이어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33~34쪽 인터뷰 참조). 유족과 시민단체는 제조1팀장 김씨에 대한 역학조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족은 솔벤트 같은 유기용제에 만성으로 노출된 것이 돌연사의 원인이라고 굳게 믿는 편이지만 연구원은 일단 이에 대해서는 머리를 젓는다. 이렇듯 집단 사망 노동자의 사인이 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유족이나 연구원, 그 외 한국타이어 문제를 들여다봤던 의사나 전문가 다수가 공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제가 있다. ‘이 회사 조직 문화가 많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10여 년 동안 100명 가까운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겨우 지난해 8월에야 그 진실의 일단이 드러났겠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타이어의 독특한 조직 문화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다고 본다. 도대체 이 회사 내부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져왔던 걸까. 전·현직 노동자, 유족 등 2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현직 노동자 가운데는 김 아무개 하는 식으로 자기 성도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 이도 있었다.

“차에 도청 장치가 있는 것 같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관계이다. 한국타이어 오너인 조양래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범 부사장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이다. 얼마 전 대통령의 외동 아들인 시형씨가 3개월 수습을 마치고 이 회사 정식 사원이 됐다. 그래서 이 회사의 가장 큰 공장이 있는 대전에서는 ‘금호는 타이어 팔아 겨우 비행기를 샀지만, 한타는 대통령을 샀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시사IN 문정우
잠자다 피를 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11월10일 사망한 한타 간부 김 아무개씨 빈소.
한국타이어 노조위원장 직선 추진위원장인 정승기씨도 만나자마자 대통령 아들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사내 인터넷망에 전 사원의 이미지가 다 있는데 시형씨 것만 없더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정씨를 다시 만났더니 그는 “기자님과 차에서 만나 그 얘기를 나눈 직후 시형씨 이미지가 사내 인터넷망에 떴다”라며 아무래도 차에 도청 장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모르는 소리 말라며 심각한 얼굴로 그의 소형차 곳곳을 의심스럽게 둘러봤다.

이런 식이다. 한국타이어 전·현직 직원의 회사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회사가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고 감시한다고 느꼈다. 이 회사 직원 몇몇이 지난해 11월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내용을 살펴보자.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 차장이 팀 전원을 사무실에 모아놓고 이 시간 이후부터 특정인을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차장은 화장실까지 따라와 소변을 마칠 때까지 계속 주시했다.…식당에서도 배식판을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동료들이 내 옆에 앉으려다가 다른 테이블로 갔다.”(조○○씨)

“친형제처럼 지내던 후배가 나를 만나면 자기가 회사를 다니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후배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월급을 가압류당했는데 그런 약점을 회사 관리자가 이용해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것 같았다.”(전○○씨)

“출퇴근시 경비들이 주차 위치까지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성과급 관련하여 현장에 조합원 요구사항이 담긴 유인물이 배포되자 감시의 정도는 더 심해져 현장의 모든 관리자가 공장 내의 휴게실, 공공장소에 배치되어 24시간 감시했다.” (송○○씨)

이와 비슷한 내용의 자술서는 이 외에도 많다. 현장 주임으로부터 동료 아무개의 일상 생활을 낱낱이 보고하면 정년까지 아무 걱정 없이 회사를 다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감시와 사생활 간섭은 회사에 불만이 있거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집중됐다고 한다.

11월10일 기자는 제조1팀장 김 아무개씨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시 을지대병원 영안실에 달려갔다. 충격을 받은 고인의 부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두 아들이 조문객을 맞았다. 기자는 사진을 두 장 찍고 유족을 취재하려다가 한국타이어 직원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그들은 기자를 뺑 둘러싸고 찍은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하다 거절하자 밖으로 내몰았다.

초상집 분위기까지 관리한다?


현직 노동자에 따르면, 이번 장례식은 노사협력팀이 관리하고 노조 대의원들이 문상객을 접대했다. 노사협력팀에서는 술자리 인원 배치까지 신경 써서 초상집 분위기를 조절한다고 한다. 회사는 이번 장례식뿐만 아니라 직원의 애경사에 깊숙이 관여한다. 상조회 회장은 회사가 무척이나 신경 쓰고 관리하는 중요 보직이다. 회사는 산악회나 축구회 같은 동아리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의심을 산다. “현재 취미 활동 동아리의 회장이나 총무까지 모두 ‘충성파’가 장악했다. 회사는 충성파의 주변에 사람과 힘이 몰리도록 교묘하게 안배한다”라고 현직 노동자 한 사람은 말했다. 

   
ⓒ뉴시스
국정감사를 앞두고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시위하는 유족과 시민단체
그는 “회사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는 차츰 자포자기해버리고 만다. 자포자기하면 그때부터는 관리자가 되는 길이 열린다. 관리자가 되면 자기 사람을 회사에 취직시킬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특혜를 누리면서 회사에 순치돼간다”라고 말한다.

회사가 노동자의 애경사와 일상 생활까지 철저하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까닭은 무엇일까. 궁극으로는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관리자와 회사 충성파의 움직임은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가 다가오면 한층 활발해진다고 한다. 술자리와 밥자리 횟수가 갑자기 늘어나며 불만 세력을 감시하고 고립화하려는 시도가 노골화한다는 것이다.

한국타이어노동조합 위원장은 희귀하게도 간선으로 뽑는다. 한 번 뽑히면 대개는 정년퇴임할 때까지 계속 간다. 대의원 투표는 기표형이 아니라 친필로 쓰는 자서식이다. 현직 노동자 박 아무개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투표 방식이다”. 대의원은 50~60명의 팀에서 한 명씩 뽑는데 자서식으로 하면 누가 누구를 썼는지 금세 알 수 있다. 따라서 회사가 원하지 않는 이른바 ‘민주 후보’를 찍는 경우에는 왼손으로 쓰거나 글씨체를 완전히 바꾼다.

함께 술 마시고 해외여행 하는 ‘노사 화합’

민주 후보가 뽑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정해진 순서로 간다. 대의원 선거에 회사 측 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은 꼭 두 명이 출마하는데 한 명은 출마의 변을 말하고 한 명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출마의 변을 말한 사람이 당선하고 다음 해에는 출마의 변을 말하지 않았던 사람이 출마의 변을 말하고 당선한다.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한국타이어 본사, 대전공장, 금산공장, 물류공장 등 4500여 노동자를 대표하는 대의원은 50명이다. 다음은 자기가 몇 년도에 대의원을 했는지도 밝히지 말아달라는(2000년대이다) 한 퇴직자의 증언이다(흘림체).

   
ⓒ시사IN 문정우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피해자 대책위를 찾은 환자들
그해 처음 대의원이 돼서 3박4일 수련회를 갔다. 수련회장인 회사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했더니 노무관리 담당 박 아무개 상무가 소파에 네 활개를 펴고 앉아 있었다. 노사협력팀의 대리나 과장뿐만 아니라 노조 간부도 90°로 인사를 했다. 어떻게 노동조합 수련회에 회사 임원이 와서 저러고 있을까 의아했다. 회의는 정해진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회의가 끝나자 술판이 벌어졌다. 대의원 사이사이 노사협력팀과 관리부서 직원이 끼어 앉았다. 회사 임원까지 참석했으니 회사 관리부서 인원이 더 많은 셈이다. 민주노조 후보에게는 술 세례를 퍼부었다. 관리부서 직원이 한 사람은 상냥하게 대하고 한 사람은 욕을 해대면서 분위기를 잡아가며 술을 마구 먹였다. 민주노조 후보가 여러 사람 앞에서 추태를 보이게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2차 노래방에서는 아가씨를 불러 놀았다. 모두 도덕성을 무장해제시키려고 했다. 한번 무너지면 민주노조 대표고 뭐고 다 똑같은 놈을 만들려는 것이다. 3차 때는 관리부서 임원과 노조 핵심끼리만 모여 회의를 했다. 다음날 아침 해장국 먹을 때는 인사팀장이 사회를 봤다. 상무가 건배 제의를 했다. 아카데미하우스에는 회사가 설치한 감시 카메라가 왱왱 돌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밤에는 인사협력팀 간부들이 노조 간부들과 고스톱을 쳐서 열심히 돈을 잃어줬다.


노조 대의원이 되면 일본이나 타이완 등지로 여행을 간다. 그때는 회사 관리부서 간부도 동행해서 방을 함께 쓰기도 한다. 대의원은 외국에서 최고급 호텔에 묵으며 관광을 즐기는데 모든 비용은 회사가 댄다. 완벽한 노사 화합인 셈이다.

올해 8월에 나온 감사원 보고서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지난해 8월 노동자 집단 사망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자 한국타이어 노동조합 위원장은 대전지방노동청을 방문한 데 이어 그 다음날엔 문서까지 보냈다. 노사가 노사자율 재해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같은 해 8월23일에 체결한 임금조정 및 단체협약에 따라 같은 해 8월29일 노사합동 안전보건 특별팀을 구성해 노사 자율 점검을 하겠으니 특별 감독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대전지방노동청은 특별감독을 유예했는데 공교롭게 바로 그 직후인 9월 한 달 동안 무려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1995년 한국타이어 노동자 대투쟁 때 해고된 박응용씨(한국타이어 유기용제 및 유독물질 중독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는 “노동자의 죽음과 폭력적인 노무관리는 쌍둥이다”라고 말한다. 1994년 12월25일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최초로 기계를 세웠다. 회사 측의 원시적인 노무관리와 무능한 노조에 진절머리를 내던 노동자가 은밀히 족구회를 만들어 조직화해 거사를 한 것이다. 그들이 처음 내건 요구 조건은 ‘때리지 마라, 일요일에는 쉬게 해달라’는 거였다. 다음해 회사 측은 힘에서 밀려 자유로운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는 각서까지 썼지만 곧바로 민주노조 설립 핵심 인물을 모두 해고해버리고 만다. 회사는 그때부터 동아리까지 철저히 관리했다고 한다.

퇴직 노동자 유종원씨(61)는 1992년 발병했다. 그는 어느 날 수세식 변기에 손을 씻는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아내와 자식을 강가로 끌고 가 죽이는 환각에 시달렸다. 화를 참지 못해 가정불화가 잦았다. 그는 직업병 인정을 받기 위해 회사와 오랜 기간 투쟁을 벌였지만 이 부서 저 부서로 쫓겨다니다가 2000년 강제 퇴직을 당했다. 그는 퇴직한 뒤 스스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유씨는 “회사 관리자나 노조 간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노동자 신상을 거울 보듯 하는데 직업병에 걸리면 노동자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모르겠는가. 그들은 누군가 직업병 증세를 보이면 점차 궁지로 몰아 내보낼 궁리를 한다”라고 분개했다.

이 부서, 저 부서 쫓겨다니다 퇴직

김순의씨(57)는 1996년 12월6일 한국타이어에 다니던 남편 나우찬씨(당시 49세)를 여의었다. 나씨 역시 암이 발병하기 몇 년 전부터 집에 오면 면도칼로 방바닥을 긁거나 방금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갑자기 벽력같이 화를 내는 증상을 보였다. 그때부터 남편은 직장에서 무능력자로 찍혀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며 낙심했다. 김씨는 “그때는 남편만 원망했는데 지금은 미안하기 짝이 없다. 만약 남편이 직업병에 걸려 그 지경이 된 것이었다면 남편은 자식과 마누라를 먹여 살리느라 괴로워도 직장에 다녔던 건데 그로 말미암아 본인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당하는 고통을 겪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족의 문제 제기가 있은 뒤 회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기자가 만난 유족과 전 ·현직 노동자의 대답은 합창하듯 ‘아니다’이다. 유족대책위 조호영 위원장은 회사와 접촉하면서 노동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는 진정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회사가 눈앞에서는 사과하고 간이라도 빼줄 듯하다가 뒤에서는 유족의 가계와 성향을 파악해 끊임없이 서로 이간하려고 시도했다며 화를 냈다.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며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라는 곳이 깡패나 다름없다”라며 고개를 흔든다.

현직 노동자로서는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놓고 유족을 도운 정승기씨에게 회사 측은 징계 폭탄과 소송 폭탄을 퍼부었다. 정씨는 세 차례의 유기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지방노동위에 제소해 모두 이겼다. 궁지에 몰린 회사는 정씨를 대전 물류센터로 발령하고 대전공장 접근금지 처분을 내렸는데 정씨는 이에 대해서도 지노위에 제소해 승소했다. 회사 측은 현재 지노위 권고를 어기고 벌금을 물면서도 정씨를 대전공장으로 원직 복귀시키지 않는다. 정씨는 명예훼손 소송 등 회사 측과 관련한 소송 20여 건을 진행 중이기도 한다.

정씨는 “회사는 개인인 나에게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를 준다. 한국타이어의 공장이 있는 헝가리에 가족과 함께 가서 편히 살라는 회유도 한다. 나와 아내는 너무 힘들어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관리자들이 거꾸로 내가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며 핍박한다.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러면 계속 회사와 노동자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다”라고 말한다.

건강은 회사가 아니라 본인이 지키는 것?

정씨를 비롯한 현직 노동자에 따르면 제조1팀장 사망 이후 회사는 관리자를 통해 금연과 금주 지침을 강화했다고 한다. “건강은 회사가 지켜주는 게 아니고 본인이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한국타이어 유족과 전·현직 노동자의 증언은 대한민국이 어째서 OECD 국가 중 산재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는지 잘 설명해준다. 한국타이어 희생자 유족이 지난해 8월 스스로 진실을 캐기 시작했을 때까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사회안전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만약 1990년대 초반 회사 측이 전근대적인 노무 관리를 포기하고 민주노조의 설립을 허용했다면 사망 노동자 중 상당수는 아직도 건강하게 일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같은 엽기적인 상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아직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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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윤순혁   2008-12-11 17:27:05
섬뜻했던 기사.. TV에서 봤을 땐 단순히 업무 환경상의 문제(위험물질 등에 노출)라고 생각했었는데 감시와 견제가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숨이 탁탁 막힙니다. 아직 고쳐야 할 악습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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