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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윤순혁]‘중국 나비’ 세계를 덮다
- 윤순혁
- 조회 : 12481
- 등록일 : 20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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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은 열흘 동안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30년 개혁개방의 길을 되밟았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지닌 내부 문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는 한반도에 미치는 차이나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노무현 정부 말기, 몇몇 요직의 인사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국무원 발전개혁위원회 소속 고위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얘기가 무르익자 중국 정부로서는 아킬레스건이랄 수 있는 질문이 우리 측에서 나왔다. “중국은 빈부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실 작정입니까?” 중국 측 인사의 답은 의외였다. “방법이 없습니다. 역사 이래로 격차가 해소된 적이 있었나요?” 그러면서 하는 말. “성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빈민층이 과거보다는 좀더 잘살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것이 기층이 당을 지지하는 이유니까요.” ‘특색 있는 사회주의’ 중국은 지금 교차로에 서 있다. 그곳에는 ‘성장’의 화려한 빛깔만큼이나 ‘분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개혁개방 30년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해방시켜 착취와 양극화를 소멸하고 최종으로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만약 개혁개방으로 인해 빈부 격차가 발생한다면 그것의 실패를 의미한다”라고도 했다. 12월18일로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지 꼭 30년이 된다. 그 사이 중국의 지니계수는 0.2에서 0.5로 격차가 현격해졌다. 덩샤오핑의 말을 그대로 적용해 중국의 개혁개방이 실패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중국이 이룬, 기적에 가까운 성장 수치가 너무 눈부시다. <시사IN>의 취재는 홍콩을 경유해 중국 최남단 광둥성 선전시에서 시작됐다. 1980년 중국에서 가장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덩샤오핑의 자본주의 실험은 홍콩에서 40km 떨어진 인구 3만명의 선전이 그 출발지였다.
빈부 격차는 극심, 농민 생활은 극한 선전에서의 삶은 매우 가파르다. “선전에서 건물을 지으면 사흘에 한 층이 올라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선전은 중국의 성장속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30년 만에 인구는 1400만명(등록되지 않은 농민공을 포함하면 약 2000만명)으로 467배가 늘었다. 또 작은 어촌이던 선전항은 세계 4위의 항만으로 성장했다. GDP는 어떤가. 2007년 말 기준 6765억 위안으로 무려 3848배나 늘어 천지개벽에 가까운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선포 뒤, 5년 만에 이 도시를 찾아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가 만든 경제특구 정책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선전은 덩샤오핑의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의 최대 수혜자다. 선부론은 일부 지역과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선발대’에 끼지 못한 후발 빈민을 선전의 빌딩 숲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농민공이 모여 사는 다충촌(村)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덩이 왜 우리 고향에는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라며 투덜댔다. 자신의 고향이 특구로 지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다충촌 사람에게 공장은 삶 그 자체였다. 일터와 숙소, 학교와 시장, 미용실과 당구장 등 일상의 모든 동선이 몇 걸음 안에서 해결되었다. 이 마을 한쪽에는 시 정부에서 내다 건 붉은색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기다리지 말고 의존하지 말고 바꾸고 열심히 일해서 발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곳 농민공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해 매달 1500위안(약 30만원)을 번다. 덩샤오핑이 경제특구로 지정한 4개 도시 중 세 곳이 광둥성에 모여 있다. 그 결과 광둥성은 중국 전체 수출 물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인구도 가장 많다. 1억명이 넘는다. ‘세계의 제조공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선전에서 고속열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둥관시는 완구와 IT 제조공장이 밀집해 있다. 특히 인형과 같은 봉제완구는 세계 생산량의 50∼60%가 이곳에서 수출된다. 둥관은 외자기업이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 업체의 공장 폐쇄와 이전은 지난해 말~올 초부터 본격화했다. 임금상승 요인 때문이다. 1994년까지 중국에는 노동법이 없었다. 1995년 발효된 노동법은 주당 44시간, 초과노동은 한 달에 36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초과 노동수당의 경우 150%, 휴일은 200%를 줘야 한다. 특히 올해 초 발효된 신노동계약법에 따라 장기근속자의 정년 보장과 노동계약서 작성이 의무화되었다. 또한 임금의 33%에 해당하는 양로·실업·공상·의료·생육 5대 보험의 가입 의무화는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납품업체가 법망을 피해 재하청 공장을 두는 이유다.
“왜 좀 쉬지 않나요?” “쉴 수가 없어요. 여기서는 일한 만큼 돈이 나와요.” “당신의 무릎 위에 있는 마대는 뭐죠?” “먼지 때문에 덮고 하는 거예요.” 이같은 재하청 공장은 월급이 아니라 시급으로 임금을 계산한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곳은 시급도 아니고 성과급이었다. 개당 3분5리(약 7원). 물론 불량품은 제외된다. 잔업까지 꼬박 해서 한 달에 1200위안(약 24만원)을 번다. 임금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 임가공 수출 규제, 게다가 최근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자기업은 하나 둘 중국을 떠나고 있다. 둥관만 해도 지난해 4800개나 되던 완구공장이 올 10월 기준 1500개로 줄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공장을 운영한다는 한 한국인 임원은 “지금은 버티기다”라고 말했다. “가발·신발·완구와 같은 노동집약형 산업은 이제 갈 데가 없다. 일부는 중국 내륙이나 베트남으로 가기도 했는데 아직 성공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인도? 페루? 아프리카?”
9억 농민이 세계 경제 구원? “그들이 없었다면 중국은 발전할 수 없었다.” 2005년 가을, 후진타오 주석은 농민공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이듬해 후 주석은 당 중앙위를 통해 중국의 차기 비전으로 ‘조화사회’를 제시했다. ‘선부론’에서 ‘공부론(共富論)’으로 개혁개방의 기조가 변화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역 간·계층 간 빈부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의지였지만 ‘3농(三農:농촌·농민·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출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중국 당국의 통계를 종합하면, 중국 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4000∼5000위안. 중서부 내륙으로 들어가면 이보다 더 낮아진다. 도시로 진출한 농민공이 아무리 저임금에 시달린다고 해도 연평균 소득이 8000위안(약 160만원)이 된다고 하니 농민으로서는 차라리 이불 보따리 지고 고향을 떠나는 게 상책이다. 농민공의 수는 대략 2억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웠던 것은 극한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을 가진 농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도시로 나간 자식이나 손자가 사준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냉장고·세탁기·전화기 보유 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비밀을 알 것 같았다. 1981년 기준으로 냉장고의 보유 대수는 100가구당 0.2대에서 95대로, 세탁기는 6대에서 96대로 폭증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내놓은 ‘가전제품 하향’(농민이 가전제품을 살 경우 보조금 지급) 정책으로 중국 기업과 외자기업 간에는 선점 경쟁이 벌어진다.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한 공헌도에서 내수 소비에 의한 성장이 투자나 수출 성장을 추월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내수시장이 세계경제를 구원할 단계에 이른 것인가”라는 기대감 섞인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9억 농민이 세계의 눈길을 끄는 이유다.
“문화대혁명은 동란, 개혁개방은 난동” 이희옥 교수(성균관대·중국정치)는 30년 개혁개방의 최대 리스크로 ‘체제 정당성 위기’를 꼽았다. “시중에 ‘문화대혁명이 동란이면 개혁개방은 난동이다’라는 말이 떠돈다. 격차 사회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개혁개방의 성과가 일거에 날아갈 수 있다. 그동안은 경제 업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해왔지만 이제는 문제가 너무 커져서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사회주의가 뭐냐’라고 했을 때 화살은 공산당 일당 체제로 꽂힐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에서는 집단 시위가 급증했다. 중국 정부가 밝힌 통계로도 1993년 1만 건에서 최근 10만 건 이상으로 늘었다. 대부분 농촌에서 발생한다. 생계형 시위다. 취재진이 가장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베이징에 있는 인민내방접대소였다.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몰려든 민원인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저우 씨(헤이룽장성)는 “우리나라 모든 문제가 다 이리 온다. 지방에서 누가 해결해주나. 부패 관료들은 믿을 수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압력을 가하면 문제가 빨리 해결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인은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관용과 기대를 가진 반면 지방정부에는 즉자적 분노를 공유한다. 지금 단계에서야 ‘중국판 뉴딜’이 버티고 있지만, 앞서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가 그렇듯 중국이 제로 성장권에 돌입했을 때 중앙정부로 집중되는 분노를 과연 중국의 정치 세력은 감당할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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