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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이동현]바람의 말 - 세상의 모든 라면박스

  • 이동현
  • 조회 : 11326
  • 등록일 : 2008-12-02
 

 


상점들이 몰려있는 제천시 중앙로 문화의 거리. 이른 아침부터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가계마다 많게는 50%까지 세일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시장 뒷골목에는 군데군데 연탄재가 쌓여있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가계에서 나온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는 가계들도 있다. 그냥 버리던 빈 박스를 내어놓지 않고 모았다 직접 파는 것이다.


우정우(71, 중앙로2가) 씨는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김 씨는 “새벽에 나오면 점심시간 때면 일이 끝났는데, 요즘은 2시를 넘기기 일쑤다”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가계에서 나오는 박스 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폐지 가격이 떨어져 수입도 줄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1kg에 150원하던 것이 지금은 5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물을 사들이는 ‘제천자원’의 김순자(52, 제천시 화산동) 씨는 “얼마 전까지 원자재 값 상승으로 고물 값이 좋았지만,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폐지를 모으는 김철석(69, 제천시 명동)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 쪽 팔을 잃어 부인과 함께 고물을 모으는 김 씨는 “점심도 거른 채 3시까지 있었지만, 리어카를 채우지 못했다”며 “그나마도 예전에는 빈 캔도 수집했지만 요즘은 받아주는 데가 없다”고 했다. 리어카를 채우면 보통 100kg. 이것을 팔면 김 씨는 5,000원을 벌 수 있다.


 

“가계에 보탬이 될까하고 나왔다”는 정연분(여, 57, 제천시 청전동) 씨는 아들과 함께 다닌다. 정 씨의 아들 박기영(35)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줄곧 실업자로 지냈다. “남들처럼 똑똑하지도 못한데다 몸이 약해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정 씨 옆에서, 기영 씨가 밝게 웃는다. 정 씨는 “남편이 이발관을 운영하지만 벌이가 신통찮다”고 했다. 손님이라곤 노인 몇몇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요즘은 돈을 아끼느라 오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아들과 함께 해서 좋다”며 웃어 보이는 정 씨. 그녀가 하루 동안 버는 돈은 3,000원이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받는 김영자(74, 제천시 청전동) 씨는 사정이 좀 낫다. 김 씨는 제천노인종합복지관(제천시 독순로, 이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 수강신청 결과를 보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다. 김 씨가 “복지관 수업 신청인원이 너무 많아 추첨을 통해 수강자를 뽑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수업의 수강신청 경쟁률은 4:1이 넘는다. 1년에 만원만 내면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 하는 수업은 비싸서 갈 수 없다”는 김 씨는 이번 추첨에서 떨어지면 박스 수집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힘들게 돈 버는데 편히 있을 수 없다”며 “운동하고 돈 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복지관 옆 은행 앞에서 한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은행 벽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옆 동산 공원에는 추운 날씨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햇볕아래 삼삼오오 모여 있다. 겨울 볕은 따스했다가도 금방 식어버렸다. 공원 옆에서 30년째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김연호(57, 제천시 중앙동) 씨. 그가 재스민차를 마시는 동안 사무실 난로 위 물주전자에선 하얀 김이 나오고 있었다. 공원에서 바로 보이는 그의 가계 앞에는 티베트이나 히말라야에서 볼 수 있는 ‘룽다(Rungda)’가 걸려있다. 바람의 말이라는 뜻을 가진 ‘룽다’는 만트라와 경문을 인쇄한 다양한 색깔의 천이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라는 염원을 담아 이 천을 건다고 한다.


제천 /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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