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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IMF 때보다 더 햐~”[경제침체기사-윤순혁]
- 윤순혁
- 조회 : 11747
- 등록일 : 2008-11-27
“IMF 때보다 더 햐~”
인력소 외국인, 한국어 못해 임금차별까지
새까만 새벽을 밝히는 전광판 아래로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간다. 빗방울이 제법 방울져 떨어지자, 담배를 입에 문 사람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처마 밑으로 모여들었다. 30여명의 인부들이 연신 깊은 숨을 내쉰다. 커피로 빈속을 달래려는 너 댓이 고물이 된 자판기 앞으로 그룹 지었다. 인력소 안에는 4명의 여성구직자들과 20명 안팎의 남성구직자들이 난로가까이에 몰려있다. 간혹, 승합차나 트럭이 멈춰 몇몇을 태우고 가기도 한다. 빠져나간 수만큼이 대기하듯 출입문 주변에 서 있다.
“IMF 때보다 더 햐~”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던 박병호(도마동·62)씨의 말이다. 박씨는 대전서만 30년 넘게 목수 일을 해 온 베테랑이지만 최근 건설현장까지 찾아온 불황엔, 난색을 표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와 못나가게 될 것 같다”며, “최근 일 해본 게 까마득하다”며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대전 도마동의 서부인력은 5시40분 같은 시각, 인근 인력소 보다 붐비는 편이다. 비수기인 11월쯤부터는 하루 평균 130명 정도의 구직자가 몰려든다. 성수기인 여름 250~300명 보다는 적은 수지만, 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 가 침체되면서 “하루 평균 100명 정도가 일자리를 구한다”면서도 “오늘같이 비가 오게 되면 현장 특성상 하루전날 맺어둔 약속이 자동 파기돼 50명 내외만 겨우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서부인력 대표 임장수(도마동·53)씨가 말했다. 또한 “건설업체가 부도나거나 구직자가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겨 예년에 비해 60%정도의 매출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경기침체에 따른 불만을 토로했다.
대전 도마동에 위치한 다른 인력소인 성진인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겨울철 평균 40명 정도가 일자리를 구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면 구직자들은 거의 허탕을 친다”며 “최근엔 경기침체로 일거리가 거의 없자, 구직자조차 연락처만 남길 뿐 나오지 않기도 한다”고 성진인력 상담원 김의숙(도마동․48)씨는 말한다. 7시 20분경, 갑자기 들어온 일로 어렵사리 일을 구한 정성용(도마동․52)씨는 “비가와 다시 돌아오게 될 수도 있지만, 하루 만원 꼴로 교통비를 준다고 해서 나서는 길”이라며 “다른 자리가 있을까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나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정화(도마동·53)씨는 “작년 이맘때에 비해 일거리가 50%가량 준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특기가 있는 이는 다행인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목수, 미장, 철근 등 특기가 있는 경우엔 수요가 많아 일당이 12만원인데 비해 흔히 말하는 잡부들은 일당으로 7~8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인력소에 10%의 수수료를 떼고 나면 손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혹여 악덕업자라도 만나면 교통비를 본인이 부담하거나 무리하게 일을 시켜 의료비 등으로 일당의 상당부분을 지출하게 된다.
최근 인력시장에는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외국인 인부들도 모여들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이들은 일거리가 줄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나마 일용직이라도 얻게 되면 며칠은 버틸 수 있다. 조선족인 안영매(34)씨는 “일감이 줄어 석 달 전까지 다니던 공장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새벽인력소로 나왔다”며 “일자리가 없는 날이 많지만, 혹시나 해서 아침 일찍 채비를 차린다”고 말했다. 안씨 같은 경우는 한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여성인력은 가정집으로 가는 경우도 많은데 의사소통 및 생활방식 탓에 한국인을 찾기 때문이다. 또 현장에서 소통이 불가한 경우, 불이익을 받는 등의 문제가 생겨 가능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짝지어 내보낸다.
이는 외국인 남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면 국적을 분간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불편을 겪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력소는 아침 8시경이면 새벽일과를 정리하는데, 이날은 8시 20분께까지 자리를 지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15명 가까이 있었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한 중국유학생은 “택배아르바이트와 병행해 인력소도 종종 나오지만, 요즘 부쩍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다”며 “용돈과 등록금을 혼자 해결하는데, 다음 학기 등록이 난감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탓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고 일하기도 한다. 당장 입에 풀칠이 아쉬워 한두 푼 적게 받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서부인력의 임장수(도마동․53)대표는 “현장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당사자에게 얘기하라”고 말하면서도 “경기 탓에 일자리가 없어 고용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8시 30분경, 누군가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말하자 하나 둘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감을 구하지 못한 30년 베테랑 목수 박병호(도마동·62)씨는 “최근엔 불황 탓에 일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 힘든 일을 안 하려는 젊은이들 때문에 얼마 전까진 목수, 철근, 미장 등 수요가 있어도 공급이 안 됐다”며 “젊은이들 80%이상이 대학을 나와 건설현장을 평생직업으로 삼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세대가 지나가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결국 힘든 일을 싫어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대신에 조만간 외국 노동자들에게 특기를 전수할 날이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