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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김하늬] 가난하다고 전화 쓸 일 없겠나

  • 김하늬
  • 조회 : 12099
  • 등록일 : 2008-11-26
공중전화를 오래 사용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뒷사람에게 팔이 비틀리고(1990년) 각목으로 맞기도(1993년) 했다. 이제 ‘애물단지’로 불리는 공중전화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통신수단’이다
 
 
ⓒ시사IN 한향란
서울 가리봉동 가리봉시장 입구 공중전화(위)는 휴대전화가 없는 조선족과 일용직 노동자가 즐겨 찾는 곳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에서 가리봉시장으로 이어진 길에는 세 칸, 두 칸 공중전화 부스가 마주보고 서 있다. 저녁이 되면 이곳은 ‘만남의 광장’이 된다.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과 이른 새벽 근처 인력업체에서 일감을 받아 나갔다가 다시 승합차를 타고 돌아온 일용직 노동자들이 뒤섞여 누군가를 부르고 기다린다.

공중전화는 이들의 ‘메신저’이다. 11월12일 저녁 7시30분, 하루 일을 마치고 승합차에서 내린 일용직 노동자 서 아무개씨(35)는 공중전화에 200원을 넣고 다른 현장에 일을 나간 친구에게 자기 위치를 알렸다. 서씨는 “나나 같이 일하는 형님들이나 휴대전화가 없거나, 있어도 형편이 안 좋으니 수신용으로만 쓴다. 일감을 받는 새벽이나 돌아오는 저녁에 여기 공중전화에 들러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걸거나 친구와 술 약속을 잡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공중전화는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속에 있다. 다른 호텔과 전국 주요 역, 포항·부산 등지의 해운센터가 그 뒤를 잇는다. 월평균 ‘몇 백 만원’ 단위로 벌어들이는 호텔 공중전화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20여 만원을 버는 가리봉시장 앞의 공중전화도 상위권에 든다. 국제전화 선불카드나 콜렉트콜 서비스 등은 빼고 순수하게 동전과 전화카드를 사용한 경우만 산정되니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근처 목공가구 제조업체에 다니는 이준씨(55)는 “조선족이나 일용직 노동자 등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여기에서는 다른 곳보다 부스에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특히 동전 전화기가 인기가 많아 어떤 때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요금 때문에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 쓴다”


공중전화의 인기는 분명히 하락 추세이다. 1999년 56만여 대까지 치솟았던 공중전화 설치 대수가 지난해 18만여 대로 크게 줄었다. 휴대전화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매출액도 급감했다. 그 때문에 공중전화는 종종 ‘적자덩어리’ 내지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난해 온라인 리서치 전문업체 엠브레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녀 53%가 최근 6개월 내에 공중전화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47%에게 공중전화는 여전히 소중하다.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공중전화 통을 붙잡고 일 년에 5억 분(2007년)만큼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상당수는 ‘휴대전화 요금이 무서운’ 서민이다. 11월11일 낮 2시쯤 서울 관악구 신원동 신원시장 앞 공중전화에 들른 박 아무개씨(61)는 같은 이동통신사 가입자에게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고, 나머지는 모두 공중전화로 해결한다고 했다.

   
같은 이동통신 가입자끼리 통화를 할 때는 할인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어서인데, 그래도 최소 3만원에 이르는 휴대전화 요금이 그의 고민이다. 의류 제조업체에 근무하다가 3개월 전 해고되면서 동시에 휴대전화를 없앤 이 아무개씨(32)는 근처 편의점에 가다가 지방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나 공중전화를 찾았다. 신림역 근처에서 노점상을 꾸리는 유 아무개씨(54)는 10년 동안 쓰던 휴대전화를 지난해 말 해지한 뒤 늘 앞치마 주머니에 공중전화 카드를 넣고 다닌다.  

꼭 가난한 사람만 공중전화를 찾는 건 아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배터리가 닳았을 때 누구나 공중전화가 절박해진다. 11월12일 오후 이 아무개(23)·김 아무개(24) 커플은 손을 꼭 잡고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상가를 빙빙 돌았다. 둘 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닳아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에게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았던 것이다. 역 구내도에는 분명히 공중전화 부스가 6군데나 표시돼 있는데 한참을 돌아 겨우 한 곳을 찾았다. 그나마 유일한 동전식 전화기는 고장이 났다. 김씨는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도 카드식 전화기밖에 없기에 포기하고 강남역에 희망을 걸었는데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강남역 6번 출구 앞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일곱 칸이나 늘어서 있지만 ‘양면 극세사 캐릭터 잠옷’을 파는 노점상이 앞을 막아놨다. 휴대전화를 분실한 한 20대 여성은 “잠옷들에 가려 지나치는 바람에 공중전화를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았다”라고 불평했다.  

공중전화 이용량이 가장 적은 곳은 강원도·전라도 쪽 산속에 위치한 휴게소나 사찰이다. 공중전화 관리·운영을 맡은 KT링커스 관계자는 “그런 곳은 한번 고장나면 직원이 낑낑대고 올라가서 고치느라 여간 고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히 철거할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공중전화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보편적 역무(모든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적정한 요금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기통신 역무)’ 서비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이 강해 적자가 나도 기간통신사업자가 손실보전금을 메우도록 했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언론은 종종 ‘그 많은 적자는 누가 메울까’ ‘애물단지 공중전화 어찌할꼬’라는 제목으로 공중전화의 낮은 수익성을 지적한다. 최근 새로 지은 군산역에는 공중전화가 아예 설치돼지 않았다. KT링커스 관계자는 “보통 길거리에 설치할 때도 도로 점용료로 몇 만원을 내는데, 역 측에서 공중전화를 음료수 자판기처럼 수익을 내는 설치물로 보고 임대료로 100여 만원씩 내라 하니 초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93.2%에 이르는 요즘, ‘돈 못 버는’ 공중전화가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책정할 때마다 “일반전화와 공중전화 등 대체 통신수단이 있다”라며 휴대전화 요금을 측정 항목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사무국장은 “일반인은 휴대전화니 인터넷 전화니 선택권이 넓어졌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고장나지 않은’ 길거리의 공중전화가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무조건 수익성만 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2
admin 김하늬   2008-11-26 12:36:57
휴대전화 급증으로 지금까지 공중전화를 "적자덩어리"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이 기사는 조금 다른 시각 (특히 이주노동자) 에서 본 것 같습니다.
admin 제정임   2008-11-26 21: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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