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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변태섭] 21세기 삐라 효과 있을까?

  • 변태섭
  • 조회 : 12890
  • 등록일 : 2008-11-21
21세기 삐라 효과 있을까?
한국전쟁 당시 삐라를 통한 심리전은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지금 탈북자 단체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삐라에도 그만한 위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62호] 2008년 11월 19일 (수) 10:50:38 박근영 기자 young@sisain.co.kr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왼쪽)는 9월23일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을 만났다.
“우리가 보내는 것은 삐라가 아니다. ‘전단지’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의 말이다. 그는 ‘사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북으로 유인물을 매단 풍선을 날려 보낸다고 한다. 북한 주민을 ‘선동’하기 위한 내용을 담지 않았으니 자신이 제작한 유인물에 삐라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도 당부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삐라’ 대신 ‘전단지’로 표기한다(그러나 사전에 ‘전단지’라는 단어는 없다. 전단(傳單)에 ‘종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전단의 사전적 의미는 ‘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이다. 삐라의 그것은 ‘전단의 잘못 쓰임, 혹은 전단의 북한말’이다. 결국 전단과 삐라는 같은 의미다. 박 대표가 ‘전단지’라고 표현한 것은 ‘정보지’ 정도의 의미를 담고 싶었으리라 추측한다.

박 대표는 왜 ‘삐라’라는 말을 쓰기 꺼려한 것일까? 여기에 담긴 부정적 어감 때문일 거다. ‘삐라’가 한반도에 본격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때다. 심리전의 도구로 소련과 북한, 미국과 남한이 서로의 진영에 삐라를 뿌렸다. 합동참모본부 심리전 작전장교를 역임한 이윤규씨는 저서에서 삐라를 “한 장의 작은 종이에 발행 주체의 선전 내용을 언어, 그림, 사진 등을 사용해 제작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당시 가장 호응을 받았던 삐라는 ‘귀순증’이다.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 기간 삐라의 설득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뿌려진 삐라의 34.6%가 이런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전단을 가지고 오면 귀순을 받아준다는 내용을 담아 유엔군이 살포한 전단은 북한군에게는 포로가 될 경우에 대비하는 ‘생명보험’ 구실을 했다. 북한은 지난 10월25일 노동신문을 통해 “삐라 살포를 포함한 심리전 책동은 전쟁 전야에 상대측의 심리를 흔들기 위하여 벌이는 호전광들의 상투적 수법의 하나다”라고 비난했다.

삐라로 김정일 위원장의 사생활 폭로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한에 보내는 유인물은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어 탈북체험기, 6·25 남침설에 대한 부정, 북한이 망한 이유, 김정일 위원장의 출생과 여자 관계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내용은 전부 ‘김정일이 얼마나 부정한 인간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유인물을 읽게 될 북한 주민이 김정일 위원장과 잘못된 북한 체제에 의해 얼마나  유린과 착취를 당하는지 말하는 것과 같다. 

박 대표의 바람과 달리 언론에서는 그가 보내는 유인물을 ‘삐라’로 쓴다. 황근 교수(선문대 신문방송학과)는 “삐라는 내용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성이 중요하다”라며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유인물을 ‘삐라’라고 규정했다.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진영에 뿌렸던 삐라에도 전쟁 상황에 대한 객관적 내용부터 귀순을 종용하는 선동적 내용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었다. 사실과 진실을 알리더라도 이를 통해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보냈다면 단순한 전단으로 보기 어렵다.

   
ⓒ시사IN 백승기
자유북한운동연합 사무실에 쌓여 있는 삐라(위)는 바람이 북쪽을 향해 부는 날 북한으로 간다.
제성호 교수(중앙대 법대)가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단지에서 김정일의 여자 이야기는 빼는 것이 낫지 않으냐?”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가 “그러면 총알을 넣지 않고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라고 발언했다고 알려진다. ‘김정일의 여자 관계’를 ‘총알’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삐라를 살포하는 집단이 ‘사실이 갖고 있는 파괴력’을 염두에 두었다는 방증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에서 제작한 유인물에 그들의 주장대로 ‘사실과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에도 전문가는 동의하지 않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를 제작한 사람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삐라에 북한에 대한 반감과 편견이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호소력 있는 유인물을 만들기 위해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부단히 애를 쓴다고 주장한다. 하나원 등 탈북자 보호단체가 북한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파악한다. 유인물에 들어가는 문장은 ‘북한식 한글 표기법’을 따른다. ‘력사(역사)’ ‘로씨야(러시아)’ 같은 낯선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다. 김정일 위원장의 여자 관계는 조직도를 그려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박상학 대표는 “전단지 덕분에 미국과 북한이 움직이고 있다”라며 유인물의 효과를 확신했다.

탈북자 단체 “삐라 효과 확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인물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이들이 대상으로 한 북한 주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면역효과’ 때문이다. 황근 교수는 “북한 체제에서 오랫동안 세뇌교육을 받아온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유인물을 보낸 주체는 북한의 체제를 거부하고 나간 탈북자다. 북한 주민으로서 내용을 신뢰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이 정도로 와해될 것이라면 북한은 벌써 붕괴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 내에서 체제에 피로를 느끼고 힘든 상태에 처한 사람이 유인물을 받는다면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염려도 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신과 같은 존재다. 모욕적인 말을 풍선으로 날려 보내면 북한 사회에 얼마나 충격이 크겠는가?”라며 대북 전단 살포가 우리 생각 이상으로 북한에 충격과 혼란을 준다고 말했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1
admin 변태섭   2008-11-21 14:28:16
삐라. 어떻게 보면 남북관계 경색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누구누가가 삐라를 북에 보냈다"는 식의 기사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삐라를 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에 대한 사고의 차이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이 기사를 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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