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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강성명] 시각장애, 그 깊은 어둠 디지털 새벽 오나

  • 강성명
  • 조회 : 11585
  • 등록일 : 2008-11-18

[사회] 시각장애, 그 깊은 어둠 "디지털 새벽" 오나

기사입력 2008-11-18 09:38 기사원문보기

시각장애인으로는 첫 사법시험 2차 합격자인 최영씨가 수험생활을 함께한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작동하고 있다. / photo 조선일보 DB

첫 사시 2차 합격 최영씨, 시각장애인이 개발한 화면 읽기 프로그램으로 감동의 드라마 일궈내

‘인간 승리’ ‘불굴의 의지’…. 

장애인들이 큰 성취를 이룰 때 흔히 나오는 수식어들이다. 지난 10월 23일 최영(27·서울대 법대 졸업)씨가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사법시험의 2차 관문을 통과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뜨거운 찬사가 이어졌지만 정작 주인공인 시각장애인들은 ‘무엇을 성취했는가’보다는 ‘어떻게 성취했는가’에 대해 사회가 좀더 주목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어떻게 두툼한 법서(法書)를 읽을 수 있었을까. 글자나 그림을 음성으로 읽고 점자로 바꿔주는 기술은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까.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려면 어떤 정책이 나와야 할까.

시각장애인 예비 법조인 최영씨

3만쪽 수험서 자원봉사자들이 텍스트 파일로 입력

최신 자료는 그림의 떡… 음성 듣기로 반복 또 반복

지난 10월 28일, 최영씨는 가족과 함께 속리산 근처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치열했던 수험 기간 기억, 합격 소식을 기다리던 가슴졸임을 훌훌 털고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흠뻑 즐기고 있다고 했다. 부산고를 나와서 재수 끝에 서울대 법대 2000학번으로 입학한 최씨. 고3 때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고 이후 눈이 급속히 나빠져 시력을 잃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책을 읽고 공부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글자 확대기를 써보기도 했지만 한 글자씩 낱자로 읽혀 집중하기 어려웠다”며 “시력을 잃어가던 2005년 1차 시험을 보고 자포자기할 때 법대 후배로 같은 시각장애인인 (최)민석이한테 화면 읽기 프로그램인 ‘센스 리더(Sense Reader)’를 소개 받았다”고 했다.

그의 수험 생활은 자료 확보와의 싸움이었다. 일반 수험생들은 서점에 가서 책 내용이 괜찮은지 훑어보고 구입해서 바로 공부를 시작하지만, 최씨는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책을 시각장애인 지원사업을 벌이던 정인욱 복지재단에 전달해야 했다. 재단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자판을 두들겨 두툼한 법서(法書)를 텍스트 파일로 만들었는데, 1000 쪽 안팎의 책을 4~5명이 나눠서 입력하는 데 짧게는 두어 달, 길게는 서너 달이 걸렸다. 이메일을 통해 받은 텍스트 파일을 컴퓨터 화면에 띄운 뒤에야 책을 ‘들을’ 수 있었다. 헌법·민법·형법과 선택과목을 보는 1차 시험을 앞두고 입력된 법서가 1만쪽. 기본 3법과 민사·형사소송법, 상법과 행정법 등 7과목을 치르는 2차 시험용으로 기본서·참고서·문제지 등 2만여쪽이 추가로 텍스트 파일로 변환됐다.

책 내용을 그대로 입력하면 되는 기본서와는 달리 객관식 문제집은 한층 복잡했다. 다섯 가지의 객관식 선택지를 읽어주고, 문제풀이 설명과 답을 이어 읽어주는 방식인데, ‘있다’와 ‘없다’, ‘~인가’와 ‘~이 아닌가’ 한 글자 차이로 정답과 오답이 갈리기 때문에 하나의 오·탈자를 확인하기 위해 한나절을 보낸 적도 숱하게 많았다고 최씨는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로운 작업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글자가 틀리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을 때면 공부의 리듬이 끊겨 애를 먹었다고 했다. 술술 읽히는 소설류가 아니라, 새로운 개념이 수시로 나오고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수험서였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다 보면 금방 피로감이 밀려왔다.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 방식의 공부이기 때문에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내용이 금방 날아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대체도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하상장애인 복지관 직원들 / photo 정복남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매년 최신 판례를 추가한 개정판 기본서와 참고서가 나오고, 고시 학원가에서도 전문 강사와 합격한 선배들의 요약 자료와 예상 문제집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최씨에겐 ‘그림의 떡’과 같았다. 학원 수강은 강의 녹음테이프 청취로 대신했고, 2차 시험 수험생들의 필수 코스인 모의 답안 작성과 첨삭 지도는 받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했다.

사시 1·2차 시험을 최씨는 어떻게 치렀을까? 1차 객관식 시험에서는 컴퓨터 모니터의 문제 화면의 음성 읽기를 듣고 답을 적어놓으면, 시험장의 도우미가 OMR 카드에 답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시험 시간은 일반 수험생의 2배. 논술형 2차 시험에서는 문제를 듣고 모니터의 ‘빈 문서’에 컴퓨터로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시험 시간은 일반 수험생의 1.5배다. 답안 작성 후 출력한 내용을 도우미가 고시 답안지에 글씨로 옮긴 뒤 일반 응시생의 답안지와 섞어 채점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 사법시험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시작된 것은 점자 문제지가 제공된 1998년부터이다. 2006년부터 장애인응시자 시험업무 지침에 따라 응시 방법을 대폭 개선해 시각장애인이 한결 편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최씨는 그 첫 수혜자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시각장애인 첫 연수생인 최씨의 입소를 앞두고 전용 기숙사를 배정하고 생활과 학습에 힘을 보탤 도우미도 지원하는 등 준비에 한창이다. 시각장애인에 알맞은 시험 제도에 대해서도 고민 중인데, 판결문과 소장(訴狀), 수사지휘·기소·불기소장을 작성하는 기존 시험 중 일부를 구술시험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전국시각장애인협회 산하 장애인변호사협회가 설립된 미국에선 2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영국에서는 450여명의 장애인변호사가 있다. 1973년부터 사법시험에서 점자문제지를 제공한 일본에서는 1981년 최초의 시각장애인 합격자가 나온 이래 모두 4명이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3명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고, 작년 합격자는 사법연수소에 입소 중이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2
admin 강성명   2008-11-18 15:51:17
이번에 이분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면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했는데 잘 풀이해준 기사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사시를 붙다니!
admin jae   2008-11-19 13:12:08
몸과 마음이 멀쩡한데도 열심히 안하는 우리들, 반성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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